최기예 속기사. 2009 중국 베이징 인터스테노.
“속기계를 떠난 지 2년쯤 흘러 속기에 대한 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오랜 망설임 끝에 도전한 터라 한국 출전자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기뻤습니다.”
최근 헝가리 국제속기경기대회 한국대표로 선발된 최기예씨는 한국 속기계가 국제속기경기대회에 첫 참여한 2009년 중국 베이징 대회에서도 한국대표로 뽑혔을 만큼 최정상급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속기사이다.
“2009년 베이징 경기대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후회도 많이 되고 아쉬움도 많이 드는 대회였습니다. 그때는 꼭 입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입상을 하지 못한 데에 따른 죄송스런 마음 등 정말 여러 생각들로 복잡하고 힘들었습니다.”
한글속기에 대한 자긍심이 갖고 있는 한국 속기계에서는 국제대회 첫 출전이니만큼 베이징 대회에 대표로 출전한 7명의 속기사, 특히 최기예 속기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그녀로서는 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회 그 자체를 즐기지 못했던 것이 아쉬었습니다. 이번 헝가리 대회에서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까 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도 있겠지요.”
최 속기사는 2011년 프랑스 파리 대회와 2013년 벨기에 겐트 대회 국내 예선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베이징대회 이후 6년이 흐른 올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속기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개인사정상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속기사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어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속기의 설렘을 손끝으로 느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국 속기계가 두 번째로 도전한 2011년 파리 국제속기경기대회에서 자막방송 후배 속기사인 김봉철씨가 리얼타임 부문 2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소식을 듣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베이징 때 입상하지 못해 속기계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을 김봉철 속기사가 해소해 주었으니까요. 지금도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5년 국제속기경기대회는 7월 18일부터 24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세계 속기계 최대 행사인 제50회 인터스테노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다.
“육아 문제로 속기사의 일은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헝가리로 떠나기 전까지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해야지요. 일단 듣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 보니 낭독문을 녹음해서 많이 듣고 빨리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기예씨는 한글속기 국가자격 취득후 MBC, KBS, EBS 등 공중파 방송은 물론 국회방송, 복지TV, KTV 등 각종 케이블 채널의 자막방송 속기사로 14년간 활동했다. 또 경찰청의 원스톱지원센터에서 3년간 속기를 하기도 했다.
“1급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후 바로 한국스테노 자막방송실에 입사했습니다. 연습생 시절에 우연히 TV에서 자막방송을 본 후로 꼭 자막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게 됐고 자격증을 취득하자 바로 주저없이 입사하게 됐습니다.”
최기예 속기사와 17년 동안 속기 현장을 함께 한 속기 기기는 CAS속기이다. 지금도 자신의 CAS속기 기기를 집에서 항상 가까이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속기연습을 하고 있다.
“CAS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BAR)식 키를 사용하고 있는 속기 기기입니다. 바식 키는 처음 접했을 때는 뭔가 어색하지만 속도가 높아질수록 편안해짐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 속기가 평생직업인 속기사 입장에서 바식 키의 직업병 예방 기능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기예씨를 잘 아는 속기사들은 그녀를 ‘타고난 속기사’라고 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속기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척 어렵고 고된 일일 수도 있는 속기를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번 헝가리 속기대회 시상식장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시상대 위에 선 그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