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분도 같이 합격하신 건가요?>
뭐,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 그 친구가 떨어지고 제가 합격한 거예요.
합격발표 나고 전 학원을 안 갔는데 그 친구는 너무 걱정되고...
으아~~ 어찌나 미안하고 당황스럽던지 따로 전화도 못 하겠더라고요.
한턱 쏘는데도 아주 그냥... 기쁘기보다 조심스러웠던 기억만 있네요.
<그럼 친구분은 그 후에 어떻게 되셨어요?>
저랑 같이 간 OO지법 이후 한 번 더 떨어진 후 세 번째에 합격해서 그 친구 소원대로 지금
OO지법에서 속기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면접 연습할 때 거울을 보니 절박함 때문인지 얼굴과 분위기가 완전
너무 어둡고 음산하기까지 한 것 같더래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좋아하는 코미디영화도 보고 거울 보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네요.
세 번째도 안 되면 수도권으로 지원 지역을 넓히고 그도 안 되면 협회에서 추천해 주는
단기계약직으로 스펙 쌓아서 법원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도전할 거라고 하면서 아주 결연하더라고요.
따라가서 슬쩍 붙은 제가 어찌나 미안한지 술 사줬죠, 그것도 면접 전 날에 ㅋㅋ
다행히 세 번째에서 합격했다는 소식 듣고 어찌나 기쁜지 또 술 사줬죠. ㅎㅎㅎ
<법원을 목표로 한 친구분을 떨어뜨리고 합격한 비결이 뭔가요?>
이렇게 말하면 좀 건방져 보일 것 같지만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제가 테니스 아마추어 선수권 출신인데 그때 면접관으로 오신 판사님께서 제 이력을 보고
굉장히 관심을 보이셨어요.
다른 분들한테는 질문도 거의 안 하시고 저한테만 질문을, 그것도 테니스에 대한 것만
많이 물어보셔서 이건 뭐가 뭔지...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속기보다는 오랜 시간 한 테니스 얘기가 더 자연스러웠던터라
대답도 편하게 했고요.
제 기준이지만 면접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나만 화기애애, 다른 분들은 화기애매ㅋㅋ)
하고 즐거웠어요.
<아! 테니스 선수셨어요? 속기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경력이신데요?>
ㅎㅎㅎ 저도 제 테니스 경력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랐어요.
긴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 배우고 싶은 것, 또는 좋아하는 것들이
언젠가 또다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시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특히 운동은 속기공부할 때 머리 무거워지거나 같은 자수에서 헤맬 때 큰 도움이 됐고요.
안 될 때는 과감하게 일어나서 한바탕 땀 흘리고 나면 정신도 맑아져서 집중이 잘되는 것 같더라고요.
속기공부할 때 체력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법원업무 얘기 좀 해 주세요>
저는 아직 민사부에 있는데 말 들어보니 형사부가 많이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업무가 재판상황을 속기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이 바쁘다는 건 재판이 더 많다는 얘기예요.
재판이 매일 있는 건 아니라서 늘 바쁜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재판이 있어서
번문작업에 필요한 잔업근무도 해요.
일의 순서는 재판이 열릴 때 우선 재판장에서 전체 상황을 빠짐없이 속기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오탈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번문작업을 해요.
판사님에 따라서 실시간 속기를 하는 재판도 있어요.
이럴 땐 많이 부담스럽죠, 아무래도.
번문작업 할 때 현장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한 후여서 그런지 잘 안 들리는 말도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녹음물로만 작업하는 것보다 전체 상황을 이해하면서 작업하는 게 훨씬 수월한 것 같아요.
<법원 내에서 사내커플이라고 하시던데요, 맞죠?>
OO지법 내에 테니스동아리가 있어요.
거기에서 만났는데 제 씩씩한 모습이 좋다는 이상한 사람이 한 명 있더라고요. ㅎㅎㅎ
운동을 오래 해서 그런지 제가 내숭도 없고 다소 과하게 씩씩한 편이어서 그간 주변에 남자들은
다 혈맹, 동지 뭐 이런 느낌으로 지냈는데 이런 나를 좋아하다니...
뭐, 좋다니 어쩌겠어요, 사귀어주고 있는 중이에요. ㅋㅋ
<법원근무의 즐거움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법원 인트라넷이 꽤 잘 구축되어 있어서 누구 누구 얘기하면 어디 법원 사람이라고 하면서
웬만하면 서로 다 잘 알아요.
아까 말한 그 친구도 다른 지법이지만 만나면 누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막 다지는 거죠. ㅎㅎㅎ
또 뭐, 속기공무원이 그렇듯 법원도 대다수가 카스속기사인지라 서로들 잘 알기 때문에
유대감이 굉장히 좋은 편이고요.
그 소소한 즐거움도 나름 법원 생활의 즐거움이에요.
<법원을 지망하시는 속기교육생들에게 좋은 말씀 좀 해 주세요.>
속기의 길을 선택하셨다면 오로지 열심히 연습해서 자수 높이는 데만 전념하세요.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부담이 되어 연습할 때 힘들어하는 분들 많이 봤어요.
제가 속기사가 되어 법원에 들어오니 당연하겠지만 주변엔 온통 카스속기사뿐이에요.
오래 계시는 분도 있고 공부 더 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특히 여자분들은 임신, 출산으로 휴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공개채용하지 않고
카스 속기사가 대부분이니 당연히 카스협회로 추천을 의뢰해요.
이런 단기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경력이 결국 법원으로 들어가는 데 중요한 스펙이 되니
기회로 활용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뭐, 운이 좋아 저도 법원속기사가 됐지만 속기공부할 때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그때의 노력이 이러한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면 이 운도 결국 제가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4월 시험에 그동안 노력하신 그 이상의 좋은 결과가 있으실 거예요.
파이팅!!
작성일 : 15-03-1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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