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출산 육아정책 부럽기도
입사할 당시에는 결혼하면 그만두겠다는 각서까지 써야 하는 제도가 있던 때여서(물론 결혼할 무렵에는 그 제도가 없어졌지만) 맞벌이 부부라는 용어조차 매우 낯설었는데, 요즘은 직장 안에 어린이집을 마련해 주는가 하면 임산부를 배려해 주기도 하고 육아휴직도 2년간 할 수 있는 등 정책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다.
아무튼 결혼은 했지만 그때는 국보위 시절로 직장 분위기도 좀 살벌하던 때여서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생활을 하기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임신이 되어도 그 사실조차 말하기를 꺼려했었던 시기였으니까.
그래도 정년퇴직을 3년 정도 앞둔 현재까지 무사히 지내온 것을 곰곰 생각하면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한 좋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니와 늘 한결같은 나의 남편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든든하게 삶의 터전이 되어 준 국회사무처와 그동안 동고동락한 선후배, 동료 그리고 그 외 모든 직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앞으로 내 생애 남겨진 시간이 얼마일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껏 받아온 것보다 많은 것들을 주위와 나누는 시간들로 세월이라는 열차에 그득 실을 수 있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년에 비해 국회는 조용하나 의정기록과 직원들의 손은 여전히 바쁘다. 다른 부서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20일간의 국정감사를 마치자마자 열리는 본회의와 위원회 등으로 콩튀듯 팥튀듯 회의장을 드나들며 틈틈이 탈고를 하곤 했지만 밀려 버린 국정감사 원고 등을 이 조용한 틈을 타서 손보느라 쉴 새가 없기 때문이다.

업무량 크게 늘어 바쁜 나날 보내는 속기사들
2006년 6월, ‘소위원회 기록 의무화’가 시작된 이래 의정기록과 업무량은 배가 되었지만 속기사 수가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정기국회 중에는 본회의를 비롯해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16개 상임위원회, 그리고 그에 따른 총 17개 소위원회, 게다가 그때그때 구성되는 청문회와 특별위원회까지 겹쳐서 이 회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라도 할 때면 종종 손오공의 분신술이라도 부리고 싶은 상황에 이른다.
1970년대 중반에는 국회의원 수가 지금보다 80여 명이 더 적었고 국회법에는 정기국회와 임시국회를 포함해서 총 150일을 넘기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기도 했었다. 게다가 1980년 재개된 국정감사권도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 업무량으로만 본다면 그때가 천국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토록 천국이었던 때나 지금이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속기사들의 절대 불변은 회의 중 의원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관(史官)의 정신으로 늘 업무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 열매로 생산되는 수많은 회의록이 바로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줄 의정역사라는 긍지 하나로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아니하든 간에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120% 혼신의 힘을 다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떠날 입장에 있는 내게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우리 직장이 각 부서마다 그 업무의 특성을 서로 진정으로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확립되어 국회 가족들이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보람차고 그래서 더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졸문을 다듬는 동안 세월이라는 열차가 어느새 12월 20일 목요일,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섰다. 어제 투표에 의해 오늘 새벽, 우리나라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태어났다. 더불어 아침 햇살도 유난히 맑은 듯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새 대통령께서도 임기 5년 동안 항상 건강한 가운데, 소외된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정책을 두루 펼쳐서 온 국민이 환하게 웃으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싶다.
끝으로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의 만수무강을 빌며 계사년 새해 뜻하신 바 형통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