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속기 세계 2, 3위 한국 속기사 자랑스러워”

7월 16일 목요일, 드디어 비행기 타는 날이다. 그보다 공항에서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속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항상 듣는 입장에서 이제는 속기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니 답하기가 어려웠다. 여태껏 속기를 하면서 속기 기술을 익히는 데만 주력했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덕분에 속기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국전 인천국제공항. 양세희 속기사

인터뷰도 하고 출발 전 사진 촬영도 했지만 여전히 내가 세계속기경기대회에 참가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 걱정되었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사전준비를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서 가장 요긴하게 쓰인 준비물은 바람을 넣고 뺄 수 있는 휴대용 목 베개다. 이게 목을 잘 받쳐주었기 때문에 앉아서도 잠을 푹 잤던 것 같다. 내후년에 열리는 베를린 대회에 참가하는 분들도 이것을 꼭 챙겨 가면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 헝가리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어서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야 했다. 그래서 17일 오전, 오후는 이스탄불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며 외국에 왔다는 것을 실컷 느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골 할머니댁에 온 줄 알았다. 내 코끝에 고추 말린 냄새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냄새의 원인은 고추 즉, 헝가리 특산물인 파프리카로 굴라쉬 수프 같은 헝가리 대표 음식에 이 파프리카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다.

어쨌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박시설에 도착했지만 환경도 익숙하지 않고 속기경기 부담감 때문인지 처음엔 잠이 잘 안 왔다. 그래도 그 다음 날 활기차게 다니려면 잠을 잘 자야 해서 안대도 쓰고 귀마개도 끼고 누웠다. 그리고 심호흡을 가볍게 한 후 걱정을 내려놓았더니 잠이 솔솔 왔다. 역시 걱정이 많으면 잠이 안 오나 보다.

 

스마트CAS 전시 부스에서 연습 겸 속기시범을 보이고 있는 양세희 속기사

그 다음 날 인터스테노 참가자 등록을 위해 부다페스트에 있는 코르비누스 대학에 갔다. ‘우와, 헝가리 건물은 기본이 몇백 년이구나.’ 여기가 대회장인지 전시관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축물들이 웅장하고 멋졌다. 
 
 
 

인터스테노 제50차 총회/세계속기경기대회가 열린 부타페스트 코르비누스대학

 
7월 20일 월요일, 올 것이 왔다. 속기경기가 있는 날이다. 밝게 웃으려고 했지만 역시 티가 나는 모양이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는지 이주성 한국속기대표단 단장님이 키보드 가방을 들어주고 사모님은 옆에서 등을 쓰다듬어 주며 다독여주셨다. 덕분에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시험장에 갔다. 경기대회장은 코르비누스 대학 3층의 구석진 교실이었다. 일단 조용하니 합격. 하지만 책상과 의자의 높낮이가 너무 차이가 났다. 드디어 내가 공항에서부터 거추장스럽게 들고 온 놀이방 패드가 유용하게 쓰였다. 설마하면서 챙겨온 게 이렇게 잘 쓰인 것이다. 역시나 다음 베를린 대회에 참가하는 분들도 방석이나 이런 의자 높이용 물건을 꼭 챙겨 가면 좋을 것 같다.